생각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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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8 22:54

생각 생각

1.
 얼마 전,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예전엔 블로그에 뭘 썼을까. 그래서 난데없이 예전 블로그를 절반 정도 역주행하며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싸이월드가 서서히 저물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득세하기 전까지 틈새기간으로서 다들 일상블로그 하나씩은 갖고 있던 블로그 전성시대답게, 그냥 그날그날의 일상 일기를 적어 올리는 식이었다. 누구랑 뭘 했고, 어디서 공부했고, 누구누구 모여서 고기를 먹고, 누가 어떤 얘기를 했고... 그리고 방문자들도 대부분 주변 친구들이 많았다. 큰 미니홈피 느낌이었다.
 그러나 요즘 와서 다시 그런 식으로 글을 써보려니 잘 못하겠다. 여러 가지 원인이 떠오르는데, 가장 큰 것이라면, 먼저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가족)이 생겼기 때문일 듯 하다. 비유가 거칠 수도 있는데, 블로그 하나만 붙잡고 있을 때는 오로지 내 이야기는 블로그에만 풀어내게 되지만, 트위터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면 얘기 하나를 여기도 하고 저기도 하고 그러지는 않는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나면 또다시 그 이야기를 어딘가에 풀어낼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게 된다. (물론, 회사 얘기는 대외비란 점, 그나마 어떻게든 적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블로그를 보지 않는다는 점 등도)
 그럼 이 글을 블로그에 적고 있는 이유는 뭔지? 이거이거 아내와 대화가 없어진 것 아닙니까 하는 논리적인 흐름을 탈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보단, 뭔가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허황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딸아이가 나중에 훌쩍 자랐을 때 아빠에게도 이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아빠라는 단단한 갑옷 속의 한계가 드러날 때가 올 것이고, 그러면 아빠라는 인간(?)은 젊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는 것을 엿봄으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이해와 공감이 생기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연구실 큰형의 누님과 중학생 조카의 학교 투어를 부탁받고 오늘 두시간 반 정도 학교를 돌아다녔다. 나처럼 회사에서 연수로 와 있는 큰형은 학부를 다른 학교에서 나온 터라 윗공대 말고는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문 샤에서 기념사진 찍고, 순환도로를 역방향으로 돌며 대략 설명을 해준 후, 사회대 밑에 주차를 해놓고 규장각-문화관-총장잔디-자하연을 거쳐 중도와 관정관 구경을 잠시 한 후 학관 기념품점을 들렀고, 39동 연구실에 가서 구경도 하고 얘기도 나누었다.
 먼저, 나... 관정관을 오늘 처음 들어가 보았다. 주변에야 이제 몇번 둘러보아 건물 자체에 대한 감흥은 줄었지만 이렇게까지 킹왕짱 좋고 아름다운 내부 시설이라니... 중도는 항상 1열과 3열(A,B) 뿐이었던 나에게 관정관 열람실은 21세기 첨단 도서관 시설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투어하는 것은 조카인데 왠지 내가 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런 곳에서라면 저절로 공부할 맛이 나겠다 싶으면서도, 실제로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든 쿨쿨 잘 자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라 이내 곧 환희를 멈추었다.
 그리고, 큰형 누님과 대화를 나누며 잠깐 사이였지만 요즘의 대학입시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사실 대학교 입학한 이래로는 대학입시는 멀고 먼 남의 일이었으므로, 이렇다 저렇다 매년 회자되는 것을 심드렁하게 넘기기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뉴스 기사를 무심히 넘기는 방관자적 상황이 아니라 직접 입시를 겪고 있는 누님과 조카를 대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여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결국 약 15년 뒤에 나에게도 오게 될 상황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나보고 만약 요즘 입사하라고 하면 십중팔구 떨어질 것이다" 이다. 그만큼 매년 해가 갈수록 취업은 까다로워지고 요구하는 스펙도 아득히 높아지고 있다. 대학입시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새는 자사고/특목고가 아니면 최상위권 학교는 아예 불가능해졌고,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내신관리나 선행학습이 당연히 필수가 되었다는 것 같다. 특히, 그런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년 정도 선행하는 것이 기본이어서, 올해 갓 중학교에 들어간 이 조카도 벌써 고등학교 수학1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어서 길게 쓰다가 다 지워버렸다. 그때는 일부만 선행을 했었고, 일반고에서 제도권 교육만 따라가다가 좋은 대학교 간 케이스(정시)가 더 많았다는 얘기...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은 안 그런데. 암튼, 자사고를 가야 교내 행사가 다양하게 열려서 학생부 만들기가 수월해진다는 트렌드(교외 실적을 기재하면 안된다는걸 처음 알았다-결국 학생이 아닌 고등학교 역량이 중요해져 버린듯), 요즘은 과학고도 조기졸업이 안되게 되면서 내신관리만 힘들어지기 때문에 인맥형성이 아니면 메리트가 많지 않다는 말, 예전 과학고의 지위가 새로이 생긴 영재학교란 곳들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전국단위 모집이기 때문에 거기 들어가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 현행 입시제도는 나에게 있어 안타까움 이상이 되진 못하지만, 10-15년 후의 입시제도는 나에게도 정말 많은 걱정을 안겨줄 것 같다. 게다가,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화해 온 입시 광풍의 기세가 그치지 않고 그대로 향후 15년간 유지된다면, 하... 내가 당사자가 됐을 때쯤에는 정말 엄청나게 힘들어 지겠구나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3.
 근래 경사가 있었던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듣고 또 생각을 많이 했다. 네이처를 쓰거나, PRL 표지를 쓰거나 하며 연구자로서 잘 나가고 있는 지인들 얘기를 하며, 내가 만약 학계에 남았다면/이제라도 학계로 돌아간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구머리와 공부머리는 서로 다르고, 둘 중 하나를 가진다고 다른 하나를 반드시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석사과정 5개월 지내본 꼬꼬마로서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나... 모르겠다. 연구머리가 있을까. 요즘 해보고 있는 연구 주제가 하나 있는데, 스스로 자신이 별로 없다. 15년 전쯤 발표된 논문에 A라는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보완이 가능하다는 흐름으로 밀고 있는데, A라는 개념은 80년대 교과서에 이미 나올만큼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전체적인 플로우가 학부생이 떠올릴만한 수준인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든다. 뭐 석사과정이라 해도 5개월차는 갓 졸업한 학부생에 가까운 존재겠지만. 그런데 A를 가지고 보완을 해야겠다고 떠올린 것이 5월이었고, 2개월 동안 진행한 것이래봤자 80년대 교과서에서 A의 수식을 찾아온 수준이다. 대학원의 '연구'가 이 정도여도 괜찮은건지 잘 모르겠다.
 그럼 공부머리는 있을까? 일단 각종 시험에서 점수는 받을만큼 받았으니 대학도 입학했고 학점도 웬만큼 유지했을 테지만, 예전 교과서들을 다시 펼쳐보면 억지로 억지로 공부하며 겨우 점수만 받고 말았던 기억들과, 어떻게 해도 결국은 따라갈 수 없었던 동기들의 물리적/수학적 센스가 떠올라 쓴웃음만 짓는다. 끈기를 갖고 앉아 있는건 잘했던 것 같은데, 그런 농부 스타일이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20년도 넘은 옛일인 것 같고, 주구장창 앉아 있던거랑 신나게 놀았던거 빼면 뭐라도 곧잘 했던게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래서야 학계는 역시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고, 그럼 회사가 내 길이 맞는건가 이거 제대로 온건가... 아 잘 모르겠다. 공부머리/연구머리 둘 다 없어도 회사에선 어쨌든 당분간 먹고 살 수 있는 것 같긴 한데, 물론 다른 잔머리/정치머리 같은 다른 머리들이 필요하긴 할 것이다만, 내가 그런걸 갖고 있는지는 추후에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냥 복잡한 고민일랑 하덜 말고 하루하루 행복한게 최고 아니겠습니ㄲ......

2016/07/12 19:13

가질 필요 없는 심리적 위축 생각

 아내가 출산휴가를 시작하는 날인 기념으로, 연구실에 하루 양해를 구하고 월요일을 함께 보냈다. 이전에 두어번 가보아 만족스러웠던 청담동의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평일 점심을 즐기고, 근처에서 디저트도 먹은 후, 백화점에 들러 육아용품을 둘러보거나 곧 있을 장모님 생신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학교에 있은 덕분에 휴가처리와 눈치보기 없이 평일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를 포함하여 직장인들은 으레, 평일의 서울 시내는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면 한산할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평일 낮시간에 시내에 나오면, 여전히 붐비는 도로와 대중교통에 의아해 한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걸까 하고 말이다. 복잡한 통계를 찾아볼 생각은 없지만, 사람들이 전부 출근과 퇴근을 하는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퇴근 시간대 못지않게 붐비는 시내는, 사람들을 붙잡고 "뭐 하시는 분이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게 만든다.
 다만, 레스토랑과 디저트 까페, 그리고 백화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에서, 이 청담동과 압구정이라는 동네만큼은 딱히 붙잡고 뭐 하시냐고 물어볼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주말에라면, 예전의 나도 그랬듯, 출퇴근과 함께 평범한 평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이해 하루 정도 특별한 여유를 누리는 장소로서 이 동네를 선택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평일 낮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평일 낮에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 뿐인듯 했다. 내가 주말에만 쉬듯 월요일에만 쉬는 사람들이겠지 하고 마음 편히 퉁치기가 쉽지 않았다.
 중고가 100여만원의, 나무 수액과 나뭇잎을 뒤집어쓴 차 앞뒤로 1-2억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차들이 발렛파킹을 기다렸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내 앞의 벤틀리가 갑자기 멈추는데 반대쪽 차선에서도 벤틀리가 오기도 했다. 백화점에서 내 차는 다른 국산차들과 함께 주차타워가 아닌 바깥 공간에 주차되어 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도 바로 찾을 수 있었으며 덕분에 주차요원이 차를 가져오는 기다림 없이 바로 차키를 건네받아 직접 몰고 나올 수 있었다. 각각의 실내를 채운 사람들은 어쨌든 대부분 20-30대로 보였다. 괜히 주눅이 들었다.
 사람을 겉보기로, 그 사람의 직업으로, 그 사람이 탄 차로, 그 사람이 사는 집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물리와 반도체라는 영역에서 나름대로 일정 수준에 도달했고, 그들은 나와는 그냥 다른 영역에서 다른 수준을 일군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어느샌가 나도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만족하는, 어린 왕자가 말하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이리저리 추측하고 재단하고, 굳이 내가 그런 차를 가지거나 그런 집에 살아야 하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어느샌가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보인다.
 '나는 평생 가져보지도 못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나도 그걸 추구하는 것처럼 되는건데, 정말 진심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어린 왕자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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